영/혼/의/편/지/

붙잡고 싶은 사람도, 붙잡아줄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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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7월 7일(173호)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인들의 몸에서 세로토닌 부족을 야기해 우리를 우울증에 걸리게 하고 결국 자살까지 하게끔 강요했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은 노인의 자살률 급증히 특히 두드러지며, 2005년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의 자살률이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에 비해 남자의 경우 여덟 배나 높았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이 자살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국인들은 사회적 빈곤이나 불평등 수준이 한국보다 더 심각한 후진적인 나라들의 국민들보다도 자살을 더 많이 한다. 이것은 자살의 원인이 단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에만 있는 게 아님을 강하게 시사해준다. 

 19세기 말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켑의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인 구속, 유대 그리고 의무가 비교적 적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더 높았으며, 가정의 통합 정도가 낮은 경우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 사회 혹은 공동체와 맺어진 관계의 끈이 가늘면 가늘수록 자살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도 고독을 자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서로 돕는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널리 만연되고 깊숙이 침투한 고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삶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며,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심장마비에 걸리거나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 역시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높아진다. 고독이라는 병으로 죽음에 이르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은 건강문제를 유발하며, 때 이른 죽음을 부르고 성장을 방해한다. 그것은 또한 낙관주의적 태도에도 파멸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안과 공포에 쫓겨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녀야만 하는 한국인들을 다독이며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한 관계 그리고 그것을 담보해주는 공동체뿐이다. 심리학자 장현갑 교수는 '외로움이야말로 암미아 심장병 같은 현대인의 죽음에 가장 중요한 질병의 원인이 되는 독약'이며, 따라서 '사랑과 나눔이 질병 발생의 예방을 위한 비타민'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현대사회에 만연하는 심신장애의 원인은 부분 또는 개별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개체와 전체와의 연걸성이 단절되는 고립화, 파편화 현상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정당하다.

 나는 앞에서 IMF경제위기 이후 경쟁원리가 전 사회에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기존의 공동체들이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개탄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고독의 견지에서 보면, 공동체의 붕괴란 사회로부터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한국인들이 그나마 그것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회적 관계로부터도 철저히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학교친구들을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직장동료들과 신세한탄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 학우나 직장동료들은 한국인들에게 더 이상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인생의 동반자도 아니다. 또 하나의 경쟁상대일 뿐이다. 아픈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긴밀한 관계의 부재, 고독감을 달래줄 수 있는 편안한 관계의 부재 속에 이 시대의 한국인들으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한 채 고독한 밤길을 홀로 쓸쓸히 걷고 있다. 누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누가 그들의 자살을 말릴 수 있을 것인가?

                                                                                                                                                                                              ​김태형, 불안증폭사회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