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 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열상 17:12, 16) 

 늦은 밤에 간호사 사무실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네, 김옥업입니다."

 "저 ooo입니다."

 "네! 웬일이세요?"

 "저...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돈 좀 주세요."

 "네? 돈이요? 죄송해요. 없어요."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35년 전 마산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화했던 남자는 며칠 전에 퇴원한 사람이었다. 그 남자가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 같은 환자의 입장에서 한 번도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나는 그를 지독히 싫어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그가 싫었다.

 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억세게 썼고 피부가 유달리 검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런 그와 한 번씩 마주칠 때마다 그의 입가에 묘하게 번지는 웃음이 무엇보다 싫었다.

 여러 환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고향에 꽤 많은 재산이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장사를 크게 해 재미를 단단히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행색은 돈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피부, 투박한 손과 세련되지 못한 말과 행동은 배운 사람이나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릎 고정수술을 해서 평지에 앉는 것을 매우 불편해 했다.

그는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그에게 면회 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가 퇴원하던 날, 많은 환우들은 부러운 눈길로 그를 배웅했다. 뒤에 남은 우리는 언제 회복하여 그 사람처럼 웃으며 퇴원할까 하는 마음으로 병원생활의 지루함과 퇴보해 가는 자신의 인생에 무척 서글픔을 느끼며 외로워했다.

 이제 그는 고향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그 남자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그것도 밤에, 그때 가진 돈이 없어 없다고 했지만 전화를 끊고 자리에 들어와 이내 후회했다.

 "빌려서라도 줄 걸 그랬나? 아니야 없는 돈을 어떻게 줘. 그것도 밤에......"

 그는 내가 가진 돈이 꽤 있는 사람으로 본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키우던 개와 염소를 잡아 약재를 만들어 먼 이곳까지 항상 무겁게 이고 오셨다. 또한 형들도 심심찮게 내 부식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그리하여 내 이미지는 부모 형제에게 사랑받는 사람으로 가진 재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날 밤 나는 갑자기 당한 일이라 거절은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내가 비록 평신도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남다르게 생각하고, 그런 부탁을 했을텐데 평소에 싫은 감정이 그를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그가 오죽 배가 고팠으면 그런 부탁을 하였고 얼마나 실망하고 돌아갔을까... 두고두고 후회했다.

 "돈 좀 주세요, 배가 고파요."

 벌써 35년이 지났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그 남자의 목소리는 목회자가 된 오늘날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묵직한 바리톤 음성으로 처량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지하철 안에서, 육교 위에서 나를 수없이 부르고 또 부르고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도 되돌아 와 그들의 손에 몇 닢이라도 쥐어 줘야만 마음이 편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때 그 남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를 따라 다닌다.

 '가난은 나라님도 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내가 왜 그런 문제로 항상 괴로워하지?'

 그는 지금도 나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배가 고프다며 돈을 좀 달라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돌고 있다.

 "주님, 이런 사람들이 제게 너무 많이 보여 무척 괴롭습니다. 이들을 축복하소서. 아멘"

                                                                                                                                   김옥업, 위로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