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을 위한 편지

2008년 5월 18일 (제206호)

장미의 이름

☆ 말 씀 : 무릇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61:3)

☆ 장미의 이름

웃음을 연구해 보니 철학이나 문학사를 통해 베르그송의 「웃음」이라는 책 말고는 웃음을 본격적으로 해부한 책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교회사를 연구해보면 웃음에 대한 핍박이 가해졌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요즘이야 웃음과 행복이 동의어처럼 여겨지지만 중세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다. 중세기에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수많은 그림 중에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해 주고 있다. 웃음은 경박스럽고 천한 것이기에 존경심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Name of the Rose)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9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다. 소설의 처음은 어두운 침묵의 기운이 감도는 중세 이탈리아 베네딕트 수도원에 젊은 수도사 ‘아도소’와 노년의 수도사 ‘윌리엄’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바로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하고 나서도 수도사들의 죽음은 계속되었다. 진상을 조사하던 두 수도사들은 결국 사전의 열쇠가 되는 ‘아프리카의 끝’이라는 밀실을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도원의 사실상 주인인 호르세 신부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바로 독살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수도원 원장은 예수가 평생 단 한 번도 웃지 않았으며, 웃음은 악마의 유혹이고 신성 모독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웃음은 신의 영역인 죽음의 두려움까지 없애주는 악마의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젊은 수도사들이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들의 마음을 여는 세상문의 문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을 몰래 읽는 것을 목격했으니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단죄하기 위해 책에 독을 발라놓았고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차례로 죽어 갔던 것이다. 물론 시학 2권이란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 책일 뿐이지만 어쨌든 중세의 엄숙한 권위주의를 떠올려보면 웃음이 신과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위험한 감정으로 여겨진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할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중세에 비하면 웃음에 대한 사고가 많이 유연해지기는 했지만 우리 기독교 안에서 아직도 근엄하고 엄숙함만을 존중하며 웃음의 가치를 비하하는 상황을 보면, 웃음에 대해서만큼은 우리는 아직도 중세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가 없다. 아무튼 웃음을 경시하는 분위기는 초대교회 시대에도 동일했던 것 같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 작가들은 예수님은 웃지 않았다고 신속하게 기술하였다. 예수님이 웃지 않았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뛰어난 지혜와 권위를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눈물이 이 땅에서의 순례 여정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웃음을 배제하는 자세를 취했던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증거는 주후 2세기경의 교부였던 ‘황금의 입’을 가진 성자로 불리는 요한 크리소스톰의 강론에 있는 “웃음은 죄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죄로 인도하는 것이다”라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웃음을 거의 묘사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엄숙함이 지닌 함정보다 웃음이 지닌 해로움을 더 강조했던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웃음을 미심쩍어 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유머 감각이 있었음을 재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